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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되던 날(나의 아버지가)

socool1 2025. 11. 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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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음력 2월 5일.
겨울이 지나고 초봄이 다가왔지만, 아직은 찬바람이 매서웠다.

아침부터 공장 안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로 가득했다.
쾅쾅 울리는 소리와 기계의 열기로, 그곳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출근했지만, 공장 안에서는 얇은 작업복만으로도 땀이 흘렀다.

오늘따라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기계 소리와 열기 속에서 몇 번이나 시계를 쳐다보며,
그저 퇴근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스피커에서 퇴근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작업복 위에 점퍼를 걸치고 공장문을 나섰다.


읍내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늦었다.
초조한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느릿느릿하게 정류장에 들어왔다.

오늘은 모든 게 급했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뛰어올라타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때였다.
분만실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잠시 후, 간호사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와 환하게 말했다.

“축하해요, 아들이에요!”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차가운 바람에 언 몸도, 긴장으로 굳은 마음도
그 한마디에 다 녹아내렸다.

‘나에게도 아들이 생기다니… 이제 나도 아빠구나.’

조금 뒤, 분만실 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왔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직은 어린 소녀 같던 아내가
내 아들을 낳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얼굴은 초췌했지만, 그 모습이 세상 누구보다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도 나는 “수고했어” “고마워” 한마디를 선뜻 하지 못했다.
그저 거칠고 굳은 두 손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게 내 마음을 대신하는 유일한 표현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우리 두 사람이 만든, 작고 여린 생명이었다.
아직은 흐릿한 이목구비, 작고 붉은 얼굴.
마치 작은 원숭이 같았지만,
그 모습이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내 새끼니까, 내 자식이니까.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당신도 안아봐요.”

하지만 나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기계 앞에서 일하느라 기름때가 밴 손,
땀과 먼지로 얼룩진 작업복.
그 냄새로 아들의 첫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품은 따뜻해야 하는데,
내 품은 땀과 기름내로 가득했으니까.

어루만지고 싶었지만,
일하느라 거칠어진 손이 아이의 여린 살결을 다치게 할까,
아이가 내 냄새를 싫어할까,
그 생각에 끝내 손을 내밀지 못했다.

아내는 괜찮다며 웃었지만,
나는 그저 가까이 다가가 아이를 바라만 보았다.
작고 여린 손가락, 조그만 입술,
그저 숨 쉬는 모습 하나하나가 신기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고생했어, 여보.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나는 **‘아빠가 된 첫날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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