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의 비둘기호 열차
비둘기호.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열차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KTX나 SRT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정겹게 달리던 그 열차는 우리 아버지 세대는 물론이고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우리 세대에게도 깊은 추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7080세대가 기억하는 비둘기호에 대해, 그 시절의 분위기와 사람들, 그리고 마음을 나누던 그 여정을 함께 회상해보려 합니다.
7080세대의 감성, 비둘기호의 시작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은 늘 비둘기호였습니다. 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서울역까지 데려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시절엔 기차역도 지금처럼 번쩍이는 게 아니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소박한 풍경이었죠. 비둘기호는 고속열차가 아니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다양한 정거장을 거치며 풍경도, 사람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좌석은 딱딱했지만, 창밖으로 지나가는 논밭과 마을들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죠. 차창 사이로 바람이 살짝 들어오던 느낌, 반찬을 싸온 옆자리 아주머니의 도시락 냄새,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간식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 “땅콩, 삶은 달걀 있어요~” 그 소리 하나에도 정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친구들이랑 한참을 웃곤 합니다. “야, 그 땐 정말 느렸지만 참 좋았지.” 누구 하나 허둥대지 않았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도 서로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었거든요. 비둘기호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던 ‘정서’ 그 자체였죠.
사람 냄새 나던 열차, 비둘기호
비둘기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람’입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그 열차 안에서 만났고, 어쩌다 대화라도 트이면 금방 정이 들었죠. 대학 입시 보러 상경하는 친구, 장날 다녀오는 할머니, 아이 손잡고 친정 가는 어머니. 목적지는 달라도 다들 하나같이 ‘삶’을 짊어지고 타고 있었어요. 저는 중학생 때 비둘기호를 타고 대구 외할머니 댁을 자주 갔었는데, 옆자리에서 함께 김밥을 나눠 먹던 분과 편지를 주고받은 적도 있었어요.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지금은 각자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만 보지만, 그때는 그렇게 낯선 사람과도 금세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 승무원 아저씨들도 참 친절했어요. 정장을 입진 않았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하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열차 내부 방송도 딱딱하지 않고, “다음 역은 청도입니다~” 하고 부드럽게 울려 퍼
지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졌죠. 이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남아 있어요. 비둘기호는 ‘편리함’보다 ‘사람다움’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시절의 상징이었습니다.
기억 속에 살아있는 비둘기호
비둘기호는 이제 더 이상 운행되지 않지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KTX가 ‘기차’의 전부일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에겐 비둘기호가 ‘마음’의 기차였어요. 때론 유치했을 수도 있고, 불편했을 수도 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해주었죠. 최근에 철도박물관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비둘기호 모형이 전시돼 있더라고요. 순간, 어릴 적 내가 탔던 그 열차가 떠오르며 괜스레 코끝이 찡했습니다. 그 열차를 함께 탔던 사람들, 함께 웃던 시간, 그리고 차창 너머로 손 흔들던 풍경들. 이 모든 것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아마도 비둘기호는 우리 세대가 ‘시간’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던 공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았고, 불편해도 괜찮았던 그 시절. 비둘기호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제 마음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비둘기호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던, 느리지만 따뜻한 이동수단이자 감성의 공간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잠시 눈을 감고, 비둘기호의 차창 너머로 흘러가던 그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함께, 혹은 오랜 친구와 함께 그 시절을 다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