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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초, 중학교 시절 나는 학교 슬리퍼를 문방구에서 샀다.
    비닐 냄새가 나는 싸구려 슬리퍼였다.

     

     

    며칠만 신어도 발등을 잡아주는 끈이 끊어져서 호치키스로 박거나 본드칠을 하고,
    심지어 피스를 박아서 고정해 신곤 했다.이상하게도 그게 유행이었다.
    “야, 네 슬리퍼 몇 피스 박았냐?” 하며 서로 웃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말이다,있는 놈의 자식들은 달랐다.
    아디다스, 나이키 로고가 박힌 정품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반짝이는 로고를 뽐냈다.
    그게 그렇게 부럽고 멋져 보였다.

    그래서 하루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야, 한 번만 신어보면 안 되냐?”

    그 친구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오백 원.”

    나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오백 원을 건네고,그 슬리퍼를 신어봤다.
    …와, 세상에 이렇게 푹신할 수가 있나.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슬리퍼 장사를 시작했다.
    신어볼 때마다 오백 원씩 받아가며 말이다.

    그 슬리퍼는 정말 편했고,디자인도 멋졌다.

    나이키 로고와 아디다스 세 줄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포기하지 않았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삼선 슬리퍼에 매직과 볼펜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로고를 새겼다.
    그리고 발뒤꿈치 부분을 칼로 파내서 그 푹신한 느낌을 흉내 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짓이었다.
    그래도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없는 형편 속에서도
    ‘나이키 신은 기분’을 함께 느끼며 깔깔 웃던 그 시절, 그게 바로 90년대의 진짜 감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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